자기 전에 많은 생각이 들었는데, 내가 질문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이 큰 어려움이라는 것이었다. 질문만 있다면 더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연구를 진행해 나갈 수 있을 것 같은데 아직은 나만의 고유한 질문이 없는 것 같다. 있는 듯하면서도 없는 듯한 이 상황이 좀 답답한 게 사실이다.

어쩌면 그렇게 질문을 찾는 그것 자체가 나의 질문일지 모르겠다. 공부는 학위논문을 작성하는 걸로 끝이 나는 게 아닌만큼 앞으로 계속해서 질문을 찾아야 할진데, 질문을 어떻게 찾아야할지 모르겠다면 졸업을 하고 나서도 이 일을 즐기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니까 지금의 상황은 나에게 장벽이라고 하기보다는 하나의 산 능선을 넘는 중과 마찬가지이고, 나는 단지 더 높은 장소로 가기 위해 그저 오르고 또 오르는 과정을 거치는 중이라고 보는 게 현명할 듯 싶다. 그래서 오늘부터는 사람들이 어떠한 질문을 어떤 방식으로 제기하여 연구해 나가는지를 유심히 살펴보고자 한다. 


아침에 조너선 하이트의 ‘바른 마음’을 읽었는데, 직관이 먼저이고 정당화는 그 다음이라는 명제에 꽤 감명을 받았다. 인간은 정념의 노예(흄)..감정이라는 코끼리 위에 올라탄 기수로서 코끼리가 끊임없이 움직이고 때로 내 통제를 벗어날 때도 있다. 우리는 먼저 결정하고 그 다음 정당화를 한다. 종교나 도덕, 정치의 문제에 대한 '의견'은 도덕적 '심리'의 발현이다. 이에 따르면 의견이 다른 사람들에게 내 의견을 '논리적인 계몽'만으로 전달하는 건 반박만 일으킬 가능성이 높으며, 그 사람을 설득하는데까지는 가지도 못하고 부정적인 감정만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높다.

글을 쓸 때도, 내가 나를 설득할 때도, 직관을 먼저 사용해 본다면, 독자와 나의 직관에 먼저 다가갈 수 있도록 하는 게 내가 쓴 글을 읽게 하고 공감을 이끌어내는데 더 효과적이라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저자 또한 그러한 원리에 따라 글을 썼다고 적고 있는데, 그래서인지 꽤 분량이 많은 책을 읽는 게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직관, 그 다음 추론, 이라는 이론이 나에게 완전히 낯선 개념은 아니고 이제까지 정반대로 살았다고 보기도 어렵지만, 분명한 논리로 이해가 되니 뭔가 더 든든해진 느낌. 

 

오늘 아침에는 그에 더해 또 미루고 미루었던 명상을 해 내었는데 정말로 꽤나 마음에 들었다. 단 10분의 시간이었지만 나는 많은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생각에 일일이 답을 하고자 하지는 않았다. 주의가 흐트러지면 또 내 안으로 가지고 왔다. 나를 느끼고 내 안의 감정과 생각을 흘려보내고 시간을 오롯이 느낄 수 있었고, 차분하게 마음이 가라앉았고 발 밑의 따뜻함이 느껴졌다. 좋았다! 습관트래커에도 명상을 했다고 체크할 수 있어서 뿌듯했다 ㅎ.

저녁에도, 내일 아침에도, 또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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