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

책의 부제는 <깨어 있는 시민이 던져야 할 7가지 질문>이다. 책은 여러 정책과 정치제도에 관해 시민들이 던져야 할 질문이라며 7가지의 질문을 제시한다. 그 중 마지막은 "아직도 메시아를 기다리는가?" 이다. 우리는 누구를 대통령 후보로 지지하는가, 누가 대통령이 되어야하는가, 이야기할 때 그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모든 것이 실현될 것이라고 기대한다. 즉, 일종의 "메시아의 도래"를 기대하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무엇보다 정치세력은 집권한다 하더라도 모든 것을 해낼 수 없다. 사실 모든 것이 가능하다면, 그 또한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정치세력이 집권하더라도 여러 견제 속에서 제한적으로 권력을 행사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원리 중 하나로서 바람직하게 여겨지게 마련이다. 이 책은 집권세력에 속했던, 그 중심에서 국정을 운영했던 핵심 실세의 입장에서 개혁이 왜 어려운지에 관해 자신의 경험에 기초하여 이야기하고 있다. 

 

 

집권만 하면 세상을 완전히 뒤바꿀 수 있는가? 

 

이 책 중 4장. 집권하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_역삼각의 권력구조와 대통령의 한계. 에서 구체적인 문제가 제시된다.

 

김병준은 노무현 정부 당시 5년 내내 청와대에서 일했던 사람이니까, 정치세력이 집권해서 청와대에서 어떻게 그들의 의제를 실현하는지, 그 과정에서의 이점과 어려움은 무엇인지에 대해 직접 관찰한 사람이다. 학자면서도 임명직 관료로서 대통령의 곁에서 오랫동안 일했기 때문에, 그것도 노무현 대통령이 매우 개혁적인 사람이었기 때문에, 5년 동안 수많은 시도와 성취와 실패와 좌절을 목도했을 것이다. 그렇기에 정치세력이 권력을 잡았을 때의 기대와 그 기대가 좌절되는 순간에 대해 비교적 체계적으로, 실질적으로 서술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정치의 제도적 문제에서 주로 제기되는 문제는 '제왕적 대통령' 이슈이다. 대통령제는 Winner-Take-All 제도로 이야기되곤 한다. 승자가 모든 권력을 독식하는 체제. 대통령에게 모든 권력이 집중된다는 이야기다. 그리하여 대통령이 권력을 휘두르면 그가 원하는대로 많은 것이 바뀔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대통령제에서 대통령의 권력이 절대적인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의 정치를 찬찬히 들여다보면, 대통령은 생각보다 많은 제한을 받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무엇을 하려고 할 때마다, 사사건건 제동이 걸렸다. 이명박 대통령도 무엇을 하려고 할 때마다, 사사건건 제동이 걸렸다. 시민들, 시민단체들, 언론의 비판부터 국회의 압력까지. 이건 한국의 대통령만 그런 것이 아니라 미국의 대통령도 그렇다. 그 막나가는 트럼프도 어떤 정책을 해 볼려고 하면 온갖 비판에 부딪힌다. 미국 대통령은 한국 대통령보다 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김병준의 결론은 이러한 대통령의 어려움을 이야기한다. 4장의 제목에서 알수 있듯이 <대통령으로 집권하더라도 세상을 바꾸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다. 즉, 대통령의 권력이 발휘되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병준은 자신의 결론이 집권하지 말자는 건 아니라고 강조하고 있긴 하지만. 

 

" 그러나 '일'을 중심으로 생각해보세요. 우리 사회를 바로잡을 근본적인 일들을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해보세요. 할 수 있는 일,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세상 크게 바꾸기, 그렇게 쉽지 않습니다. 

  오해를 피하기 위해 한마디 먼저 드립니다. 그렇기 때문에 집권하지 말자는 뜻은 아닙니다. 오히려 반대입니다. 무엇을 얼마만큼 할 수 있는지 알고 집권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래야 그나마 할 수 있는 일이라도 제대로 할 수 있게 되고, 또 더 잘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도 묻게 됩니다. 집권만 하면 뭐든 할 수 있다는 안이한 생각이나 선동은 오히려 우리를 죽이고, 우리의 내일을 죽입니다." (134쪽) 

 

그러니까 대통령을 중심으로 하는 집권세력이 정책 권한을 행사하는데 있어 여러 한계가 존재하는바, 이 한계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하고 그에 대비해야만 집권세력이 원하는 것을 그나마 잘 이뤄낼 수 있을 거란 이야기다. 정치세력은 집권만 하면 무엇이든 이루어낼 수 있다고 주장하곤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그래서 집권세력은 5년 내내 야심차게 시도했다가 넘어지고, 지지자들에게는 실망을 주고 반대자들의 온갖 비판에 시달리면서 임기를 마친다. 돌이켜보면 무엇을 했을까, 하는 회의와 후회가 들 수밖에 없다. 

 

 

왜 어려운가 

그렇다면 무엇때문에 집권세력이 무언가 의미있는 개혁을, 야심차게 주장했던 개혁을, 실행하는 것이 어려운 것일까? 김병준이 제일 먼저 제시하는 요인은 '관료세력'이다. 김병준은 관료조직의 문제로 직업공무원제도/관료커뮤니티/조직이기주의와 갈등/정보와 기술/법과 제도 및 책임의 문제를 거론한다. 그 다음으로 거론하는 요인이 선거정당국회의 문제이다.  (이 리뷰에서는 관료조직의 문제만 다루려 한다.) 

그리하여 김병준은 대통령 자리가 '역삼각형'과 같다고 본다. 대통령이 할 일은 역삼각형의 윗변처럼 넓지만, "이를 수행할 수 있는 정치경제적 혹은 권력적 기반은 역삼각형의 아래 꼭지점처럼 좁"다는 것이다. 

 

관료제도의 문제가 제1의 요인으로 지목되는 것은 대통령이 행정부 수반으로서의 헌법적 지위를 가지고 있는 것을 보면 흥미로운 것일 수 있다. 내가 관심있는 부분이 이 지점인데, 대통령은 행정부 수반으로서 관료 전체의 수장이지만 실질적으로는 관료조직에 대한 통제권을 완전히 가질 수 없다. 임기가 정해져있는 선출권력과 자리가 보장되는 비선출권력 사이의 갈등이 기본이다. 관료조직은 대통령의 도구임에도 불구하고 그리 효율적이지만은 못한 도구이다. 

 

관료조직의 문제 

김병준이 이야기하는 관료조직의 문제는 곧 집권세력이 관료들을 효과적으로 통제하는 것이 여러 면에서 매우 어려움을 보여준다. 관료조직의 문제 중 각각의 요소들을 살펴보자.

 

1. 직업공무원제도:  대통령이 임명할 수 있는 자리가 제한적이다. 

- 미국의 경우 대통령이 국장, 나아가 과장까지 임명한다. 그러나 한국 대통령은 장관이나 차관, 일부 개방직 정도만 임명이 가능하다. 1급까지는 임명가능하지만, 2급 공무원 이하부터는 철저히 신분보장이 되어 있다. 

- 1급까지 임명이 가능하다하더라도 주로 관료출신을 활용한다. 

- 대통령이라도 이런 관행을 바꾸기 어렵다. 관료집단의 영향력이나 전문성이 큰 데다 정치적 임용에 대한 비판이 강하기 때문이다. (그에 더해 정치권에서 이를 무마할만한 인물을 길러내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2. 관료 커뮤니티 

- 관료조직에는 비공식 요소를 기반으로 한 '커뮤니티'가 존재한다. 

- 관료 선, 후배 + 관료조직 외부의 이해관계자와 고객집단까지를 포함한 광범위한 정서적 공동체 

- 관피아, 모피아... 

- 이 커뮤니티는 그들의 이익을 위하지 대통령을 위해 일하지 않는다.

 

3. 조직이기주의와 갈등 

- 대통령이나 정부의 중요한 과제들이 조직이기주의의 덫에 걸려 정체되는 경우가 많음 

- 청와대나 총리실, 대통령이 조정을 하기도 하지만 한계가 있다. 

- 조정에 들어가도 쉽지 않음. 저항이 만만치 않음.

 

4. 정보와 기술 

- 행정이 복잡화되면서 관료집단이 정보와 기술을 독점 

- 장관이 임명직이라 하더라도, 관료집단에게 곧 포획될 수밖에 없음 

 

5. 법과 제도 및 책임의 문제 

- 관료집단이 대통령을 위해 일을 열심히 하려고 해도 제약이 많음 

- 관료집단이 일을 하려고 해도 온갖 것이 지뢰

- 관료들이 져야 하는 책임 - 그 책임을 지지 않으려고 하고 지기도 쉽지 않음 - 청와대가 책임을 지겠다고 분명히 표시해 주어야 함 - 그러나 모든 사안에 대해 그러기 어려움 - 그리고 집권 후반으로 갈 수록 약발도 떨어짐 

 

 

그러니까 정리하면, 한국의 대통령은 처음부터 권력을 완전히 행사하기 어렵고, 원하는 정책을 집행하려고 시도해도 관료라는 장애물에 턱턱 걸린다는 이야기다. 명령을 내려도 반대하는 관료들이 많고, 억지로 눼눼 알겠습니다 동의해도 앞에서만 동의하지 안 하는 경우도 많고, 관료들이 의지를 가지고 있어도 몸을 많이 사린다는 것이다. 

 

 

대통령과 집권세력은 한계를 극복해야 한다 - 어떻게...?

 

이쯤되면, 대통령이 무언가를 열심히 하려고 할 때, 특히 '급진적으로 바꾸려고 할 때' 대체 무엇을 실질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인지 궁금해진다. 디폴트가 '아무것도 못한다' 인 것 같다. 의욕을 가지고 하다가도 관료집단에 막혀서 무기력해지는 게 당연한 이야기처럼 들린다. 여기에 선거/정당의 문제까지 추가한다면 어려움은 더욱 배가된다. 그에 따라 왜 대통령들이 정책적 목표를 이루기 위해 대통령령과 같은 우회 입법을 많이 이용하고 청와대 비서실을 강화하고 각종 위원회를 만들면서 무언가를 이루어내려고 시도하는지 이해가 된다. 때로 정치적 개입이 관료제의 전문성과 효율성을 저해하기도 하고, 정치적으로는 제왕적 대통령이라는 비판을 받으면서까지 말이다. 

 

혹자는 관료제 또한 집권세력의 '독주'를 견제하는 하나의 중요한 세력이 되어야 한다고 말할 수도 있다. 틀린 말은 아니다. 국가 단위의 국정운영은 보수적이 되어야 한다. 많은 일들은 불확실성 속에 있다. 관료는 불확실성의 환경 속에서 전문성을 제공한다. 정치세력의 정책이념이 모두 사회의 복지에 부합하는 것은 아닐 수 있다. 그들의 정책적 이익 또한 집권세력의 사익 추구를 위해 만들어진 것일 수 있다. 김병준은 집권세력의 입장에서의 답답함을 토로한 것이지만, 견제세력의 입장에서 보자면 대통령이 제약을 받는 것이 반드시 바람직하지 않은 건 아니다. 그리하여 관료 통제는 책임성과 전문성 사이의 줄다리기라는 점도 흥미로운 논의거리다. 

 

어찌되었든 메시아는 없다.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대통령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엇인가는 진행이 되어야 하는 게 우리 사회에 필요하고, 대통령을 포함한 집권세력은에게는 주요 국정과제로 천명했던 정책적 과제들을 최대한 잘 실현하여 우리 사회의 개혁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다면 저러한 제약요인들을 집권세력/정치세력이 어떻게 극복할 수 있고, 그를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김병준의 책은 무엇이 어려움인지를 그의 경험에 비추어 잘 정리했다. 그는 책의 말미에서 <깨어있는 시민>의 숙의 민주주의를 해결책으로서 제시하고 있는데, 충분한 것 같지는 않다. 정치학도로서는 구체적인 제도나 정책을 고민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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